인촌기념강좌

제16회 국제분쟁 중재 경험으로 본 한반도 장래

조지 미첼 전 미국상원 민주당 원내총무 우선 한미관계에 대한 얘기로 시작해볼까 한다. 한미관계는 민주주의, 시장경제, 한반도 평화유지 등에 대한 양국의 동반자적 노력에 기초하고 있다. 1954년 한미 상호방위조약 이래 미국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초당적인 노력을 계속해왔다. 그런 노력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3만7000명의 주한미군일 것이다. 한미관계에도 여러 차이점과 장애물이 존재하지만 그 근간을 이루는 연결고리는 언제나 굳건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양국의 가장 큰 당면과제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며 최근 일련의 극적인 사건들을 고려할 때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대북관계의 방향과 완급에 대한 한국 내 정치세력간의 대화는 매우 고무적이며 필수적이다.

7000여명이 사망한 11일 미국 뉴욕과 워싱턴의 테러는 '미국은 안전하다'는 믿음이 깨진 사건이었다. 이전에도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대한 테러 등 소규모적 공격이 있기는 했지만 이는 미국이 테러로부터 취약하다고 믿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테러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개방되고 민주적이고 선진화된 사회가 잔혹한 테러로부터 얼마나 무기력한지 알게 됐다. 하지만 자유와 안정을 원하는 전 세계의 모든 민족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왔다. 테러라는 악에 침묵하는 것은 곧 악을 돕는 일이며 누구도 선과 악의 경쟁에서 비켜서서는 안 된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국제적 연대 속에 테러 근절을 위해 군사력은 물론 외교, 경제, 국제법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경제와 관련한 세계화와 국제연대가 논의돼 왔지만 '테러의 세계화'와 이를 막기 위한 국제간 연대에 관한 논의는 전무했다. 이제는 전 세계를 위협하는 테러의 근절을 위해 국제적 논의가 필요하다.

향후 몇 년간의 테러와의 싸움은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등 모든 나라에도 의미 있는 기간이 될 것이다. 우리가 평화를 위해 지속적인 연대를 계속해 나간다면 우리는 테러조직망을 찾아내 파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북아일랜드에서의 분쟁중재 노력을 통해 내가 얻은 몇 가지 교훈을 함께 나눠볼까 한다. 그 중 상당부분은 한반도의 현 상황과도 깊은 관련을 갖고 있을 것이다. 폭력이 난무하고 제대로 된 사회질서와 신체적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자유는 단지 추상적 개념으로만 인식될 뿐이다. 이것이 바로 북아일랜드의 모습이었다. 분쟁으로 인해 경제는 피폐해지고 실업률은 치솟았고 비극적 악순환은 계속됐다.

수년의 노력 끝에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는 1996년 6월 평화협상을 진행시킬 수 있었고, 양국 총리는 나를 협상의장으로 영입했다. 북아일랜드 평화중재 협상은 이제까지 해본 일 중 가장 지루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1997년 크리스마스 시즌과 1998년 초에는 실패의 암운과 긴장이 더욱 짙어 가는 듯했다. 신구교 양측의 폭력세력들은 평화협상을 파괴하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마침내 1998년 4월 10일 합의안이 마련됐다. 합의문 자체만으로는 지속적인 평화와 화해를 보장할 수 없고 단지 그것을 가능케 할 뿐이다. 그런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신의를 바탕으로 한 지속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지난 몇 달간 북아일랜드와 중동을 비교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한가지 해결책으로 모든 분쟁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러나 한반도를 비롯한 전 세계의 모든 분쟁지역에 적용될 수 있는 몇 가지 보편적 원칙이 있다고 믿는다.

첫째로 해결될 수 없는 분쟁은 없다고 생각한다. 분쟁의 역사가 아무리 오래됐다 할지라도 결국엔 평화가 승리할 수 있다. 내가 북아일랜드에 처음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감사합니다" "신의 은총이 있길…"이라고 말을 걸어왔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지금 시간낭비 하고 있다" "우리 분쟁은 끝이 없다"는 절망적인 말로 끝인사를 대신했다.

나는 그런 태도를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는 정치 지도자들의 책무다. 지도자들은 대중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줘야 한다. 지금 중동지역에 만연해 있는 비관론은 1995년 북아일랜드를 지배했던 비관론과 흡사하다. 지도자들의 가장 큰 과제는 평화를 향한 길이 있다는 사실을 설득하는 일이다. 이는 남북한 정치지도자의 당면과제이기도 하다.

두번째 원칙은 폭력의 위협에 굴하지 않는 명백하고 단호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번째 원칙은 타협에 대한 관용적 태도다. 평화와 정치적 안정은 상대방 입장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원칙 있는 타협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정치인들은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네번째는 평화안을 이행하는 것이 그것에 도달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북아일랜드는 여전히 분단돼 있고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평화노력이 이미 시들었다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도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최근의 폭력사태는 지속적인 정치적 대화의 필요성을 입증한다. 대화가 중단될 때 싸움은 시작된다.

한반도에서도 회담이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그와 함께 희망의 불빛도 명멸을 반복하고 있다. 또한 서로의 태도와 의도에 의심을 품기도 한다. 그러나 계속적인 대화는 정치적 공백보다 훨씬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자 하는 점은 비단 분쟁문제에만 국한되는 사항은 아니다. 나는 7년 전 북아일랜드에 갔을 때 벨파스트의 신구교지역을 양분하는 커다란 장벽을 처음 보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벽의 이름은 '평화의 벽'이었다.

그곳의 신구교들이 하는 얘기는 한결같았다. 벨파스트의 실업과 폭력은 깊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으며 기회와 희망이 없는 사람들은 더욱 폭력의 길을 택하게 되는 것 같다는 주장이었다. 절망이 불안과 분쟁의 원인이며, 평화와 안정에 가장 필요한 요소는 희망이다.

북아일랜드와 중동지역의 문제는 종교, 국가정체성, 영토분쟁 등으로 복잡다단하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있어 경제적 성장은 필수적이다. 한반도 역시 분단과 불확실성의 짐을 지고 있으면서도 한국은 눈부신 경제성장과 번영을 이뤘으니 장차 통일한국의 성장 가능성을 가히 짐작해 볼 만하다. 이제 결론을 내려볼까 한다. 북아일랜드인들은 실수를 범하지만 그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고 있다. 폭력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아가고 있다. 이 모든 점은 한국인들이 배워야 할 교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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