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촌기념강좌

제13회 우리 민족을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공자님 앞에서 논어 강의하고 부처님 앞에서 설법한다"는 말이 있는데 제가 비록 대통령이지만 여기 모이신 석학과 탁월한 지식인 앞에서 강의한다는 것이 외람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오늘 우리 민족이 모두 존경하는 인촌선생을 기념하는 이 인촌기념관에서 강의하게 된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또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저명한 고려대학에서 명예경제학 박사까지 받고 강의도 해서 오늘이 저에게는 참 좋은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에 고려대학에서 명예경제학 박사학위를 주신다는 말을 듣고 "이것은 대단히 의미가 있다", "이것이 무슨 길조가 아니냐"하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고려대학 같은 저명한 석학들이 모인 대학에서 저에게 다른 것도 아닌 명예경제학 박사를 주시겠다는 것은 제가 지금 일심전력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구조 개편과 개혁.발전이 잘 될 것이 틀림없다고 예상하기 때문에 미리 박사학위를 주시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여러분께서는 "아전인수란 말이 저럴 때 쓰기 위해 있었구나"하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국민과 함께 정말로 경제를 잘 운영하는데 앞장서서, 우리 경제의 구조 개편과 개혁.발전에 성공함으로써 오늘 고려대학에서 이렇게 영광스러운 명예경제학 박사를 주신 뜻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 민족의 저력과 우리 민족의 앞날이라는 두 가지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하고 여러분의 질문을 가급적이면 많이 받으려고 합니다.

머리속에 동아시아를 한 번 그려보면 참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전체, 월남 국경부터 사천, 티베트와 내몽골, 만주까지는 마리 동아시아지 중국과 다름없습니다. 이렇게 거의 대부분의 동아시아가 중국화되었지만 동아시아 끝에 조그마한 혹처럼 붙어 있는 한반도는 중국화되지 않았습니다. 이 한반도가 어떻게 중국화되지 않고 남아있을까요?

몽고족은 12.13세기에 중국을 약 100여 년간 지배하면서 중국 문화에 동화되었고, 그래서 지금 내몽골도 중국화되어 버렸습니다. 만주족도 1636년에서 1911년까지 약 270여 년간 중국을 통치하는 동안 만주족이 완전히 증발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은 2000년 동안 중국으로부터 정치.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면에서 영향을 받았고, 또 사대속국으로 조공도 바쳤지만 중국화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희안하고 기적적인 일입니다. 세계역사를 둘러보아도 이런 예는 매우 드뭅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몽고족이나 만주족이 그렇게 된 것은 중국의 고급문화, 중심문화를 받아들였지만 이것을 자기 것으로 재창조하지 못하고 그대로 받아들여 그 문화에 동화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받아들이면 반드시 내 것으로 재창조했습니다. 오늘은 시간이 부족해서 길게 말은 못하고 몇 가지만 예를 들겠습니다.

가령 중국에서 받아들인 불교를 원효스님 같은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해동불교로 승화시켰습니다. 대승기신론이라든가 금강삼매경론과 같은 독특한 우리나라 불교의 경지를 개척하고, 석굴암.불국사, 혹은 백제의 금동불 등 불교 미술과 건축에 한국적 특색을 넣어, 우리 것으로 재창조한 것입니다.

유교도 그렇습니다. 고려 말엽에 중국에서 들여와서 우리 나라 학문계를 지배하게 된 성리학이나 주자학도, 조선유학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조선화되었습니다. 이퇴계 선생의 이기이원론은 주자학의 이기이원론을 굉장히 깊이 독특하게 발전시켰고, 이율곡 선생은 이기이원론을 인정하면서도 이와 기는 분리될 수 없다고 보고 이기이원론적 일원론을 발전시켰습니다. 이퇴계 선생의 학문세계는 세계에 널리 퍼져서 지금도 성균관을 중심으로 매년 20개국 내외의 사람들이 모여서 연구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동화되지 않았습니다. 자기 문화를 가지지 못하거나, 자기의 문화를 가지더라도 그보다 더 강한 문화에 부딪쳐서 이를 재창조하지 못하면 망하고 맙니다. 그렇지만 우리 민족은 그것을 해냈습니다. 이 점은 우리 조상들에 대해서 우리가 참으로 경탄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이라고 해서 다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것이 우리의 커다란 저력이 되어서 한반도의 7천만이 중국의 커다란 영향에도 불구하고 음식.의복 말하는 것 등 모든 것이 다른 문화민족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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