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촌기념강좌

제10회 21세기의 한일 동반자 관계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일본총리
1. 전후 50년의 역사인식
1995년 올해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 된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또한 귀국으로서는 해방50주년이 되어 특별히 뜻 깊고 기념할 만한 해입니다. 동시에 올해는 한일 국교정상화30주년이 되는 해라서 양국 국민에게 큰 단락을 짓게하는 해이기도 합니다. 지난 8월15일, 무라야마총리는 종전50주년을 맞이하여 일본 내각의 견해를 밝힌 담화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한번 깊은 반성의 뜻을 표명하며,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죄의 뜻을 밝힌 이 담화문은 그런대로 의미가 있다고 저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만큼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저희 나라의 여러 상황을 생각해 볼 때, 과거를 되돌아보고, 역사를 명심하는 일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강조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1993년11월, 제가 한국의 고도경주를 일본 총리대신 자격으로 처음 방문했을 때, 저는 <저희 나라의 식민지 지배 때문에 한국 분들이 학교에서는 모국어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자기 이름을 일본식으로 개명해야만 했고, 종군 위안부, 강제 연행 등 여러 가지 형태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경험한 것에 대해서 가해자로서 진심으로 반성하며 깊이 사과 드리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박수) 이와 같은 저의 역사인식에 대해서는 김대통령을 비롯하여 한국의 여러분들이 높이 평가해 주셨습니다만, 그때 김대통령과 저는 과거를 솔직하게 직시하고, 역사적 교훈을 살려나가는 일이야말로 장래를 위한 확고한 우호관계 구축에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인식을 함께 한 바 있습니다. 그러한 경위를 거쳐서 올해6월, 일본 국회는 종전50주년 국회 의결을 채택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의결에 대해서는 저 자신이나 또 제가 속해 있는 당 모두가 실은 강력하게 반대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채택된 결의안은 과거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이 전혀 명확하지 못하며, 과거, 현재, 미래라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과거에 대한 역사인식을 모호하게 둔 채, 미래에 대한 의결을 행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실이 없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결의안을 채택하는 것은, 그 자체가 국제의례에 반하는 일이고, 또한 저희들 자신으로서도 견디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이러한 상황하에서 깊은 반성에 뒷받침 된 역사 인식을 일본 국민사이에 확립해 가기 위해서는 당파를 초월한 노력을 끈질기게 계속해 나가야 되겠다는 것을 새삼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한 노력의 축적에 의해서 비로소 과거의 마이너스 유산을 극복하고, 좀더 발전적인 진실로 허물없는 양국 관계가 구축되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2. 한일 양국의 공통과제

그런데 다이나믹한 약진을 계속하고 있는 양국이 시대적 요청으로서 전력을 기울여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양국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국내문제의 구조적 개혁입니다. 따라서 귀국의 김영삼 대통령이 추진하고 계시는 개혁정책에 대해서는 깊은 공감을 느낌과 동시에, 개혁에 대한 김대통령의 용기와 지도력에 항상 박수를 보내고 있는 바입니다. 또한 저는 일본이 안고 있는 것과 똑같은 문제에 과감하게 대처하고 계시는 파트너가 있다는 사실에 대단히 고무되고 있습니다.

귀국이나 저희 나라나 교육, 세제, 토지 규제의 재검토 등, 광범위한 당면과제에 대해서 과거의 타성적인 정책을 폐지하고, 과감한 개혁을 행할 것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그 어느 것이나 한가지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한 부분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 배타적인 관계에 놓여 있는 것뿐입니다만, 정치 지도자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지금이야말로 실생활자인 국민에게 눈을 돌려, 자기 스스로 희생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대처해야 할 중요한 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한국의 최고 학부중의 하나인 고려대학교에서 말씀드리는 것이므로, 양국이 안고 있는 당면과제 중에서 교육문제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저희 나라의 교육문제에 한정시켜 제 생각을 말씀 드려 볼까 합니다. 이는 어떠한 한국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공통의 문제 제기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저한테는 매일 같이 교육관계자라든가 자치단체 관계자 같은 분들이 많이 찾아오십니다. 찾아오셔서는 예컨대 자기네 지역에 이런 학교를 설립해 달라든가, 또는 기존의 학교에 새로운 학과를 증설해달라든가 하는 여러가지 부탁을 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만, 일본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의 부족이 아니라 교육의 과잉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 전국의 대학과 전문대학을 합하면 약 1200교가 됩니다. 학생 수는 약 300만 명입니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 수는 1800만 명입니다. 합해서 3100만이 됩니다. 일본의 인구가 1억2천만이므로 그 3100만명이라는 학생에다가 교직원이라든가 하숙집 아줌마와 같은, 어떤 형태로든 학교와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들을 합하면, 일본 인구의 삼분의 일이 학교업이라고 할 수 있는 상업에 종사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역사상 선진공업국이 이렇게 많은 학교를 설립하고, 모든 사람이 공부하고 있는 시대는 없었을 것입니다. 확실히 그 결과 기술혁신은 진보하였고, 경제는 성장하였습니다. 모든 나라가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국민 또한 가게를 절약하여 아이들의 학비를 염출하고 있습니다. 자, 그럼 이런 식으로 해서 도대체 교육이 나름대로의 성과를 지금 거두고 있는지 어떤지, 그 점에 대해서 우리는 한번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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