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촌기념강좌

제4회 탈냉전세계에 있어서의 미국의 역할

조세프 나이 박사 하버드대 문리대학장 제4회 인촌기념강좌는 1990년11월5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려 하버드대 문리대 학장이며 국제문제연구센터(CFIA) 소장으로서 국제정치학자인 조세프 나이박사가 <탈냉전세계에 있어서 미국의 역할>에 대해 강연을 했다. 이날 강연에서 나이박사는 현재 미국에서 탈냉전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고 밝히고 미국은 앞으로 세계정치질서유지에 책임을 져야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전략이 세계제일이 되어서는 안되고 어디까지나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원만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나이박사의 강연요지.

현재 미국에서는 탈냉전시대에 있어서의 미국의 역할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탈냉전 이후에 새로운 냉전시대가 올 것이라는 견해와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는 견해가 대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견해가 잘못되었다는 입장이다. 즉 미국은 문제를 갖고 있지만 해결불가능한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그 기점을 1945년으로 잡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 2차대전 직후 미국이 전세계 생산량의 3분의1을 차지하다 80년대에는 5분의1을 약간 넘는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미국이 쇠퇴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75년이후 미국은 전세계 생산량의 23%정도를 고정적으로 지켜오고 있다.

또 <제국주의적 과대팽창>이론으로 미국의 쇠퇴를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즉 역사적으로 볼 때 강대국들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팽창전략과 함께 과다한 군비를 사용, 이것이 나중에 오히려 국내에 부담을 주어 망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냉전이 극에 달했던 1950년에 미국의 군사비가 GNP의 10%였던 것이 최근에는 5%로 떨어졌다는 점에서 제국주의 과대팽창이론도 미국의 쇠퇴를 설명하는 적합한 이론이 못된다.

냉전이 끝나면서 다극화 시대가 온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으나 내 생각은 다르다.

미국을 대체할 수 있는 나라중 소련과 중국은 인력이나 영토면에서 강하지만 경제적으로 낙후돼 있고 유럽은 경제적으로 호황이지만 진정한 통일을 이루지 못한 상태이며, 일본은 경제강대국임에도 불구하고 군사력이나 이념적 구심점이라는 면에서 취약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현대는 다극화시대가 아니다. 미국이 아직도 세계최대강국이지만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힘의 분산>으로 약소국과 정부차원이 아닌 사적행위자들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적 각성으로 인한 군사력의 영향약화, 경제적 상호의존 질서 확산, 각종기술의 급속한 세계보급, 국제정치 의제의 변화등으로 <힘의 분산>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 힘의 본질도 상당히 변질됐다. 과거에는 군사력 경제력 등 <하드 파워>가 중요했으나 탈냉전기에 있어서는 문화 이데올로기 국제기구를 이용한 자국이익 추구능력등 <소프트파워>의 중요성이 증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하드 파워에서 뿐 아니라 소프트 파워에 있어서도 세계 최강이다.

미국의 전략적 선택과 관련해서 볼 때 미국은 아시아 태평양지역 국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미국의 전략적 선택의 주요 관심사였다. 현재 한반도에 있어서 미국의 전략적 선택은 한국의 지속적 경제발전을 돕고 남북교류 지원을 통해 남한의 비교우위를 입증함으로써 평화통일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소련의 쇠퇴와 일본의 상승기류를 평화적으로 조정하며 △국제경제가 개방된 상태에서 성장하도록 하고 △힘의 분산 확대에 공동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지정학적 전략적 과제를 안고 있다. 또 이러한 전략적 과제와 더불어 강대국의 지도력이 사라지면 경제적 보호주의가 싹터서 세계경제가 발전할 수 없다는 점을 미국이 인식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탈냉전시대를 맞아 미국이 쇠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힘의 분산> 때문에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었을 뿐이다.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