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사업

인촌선생서거 21주기 추념

인촌 김성수선생 21주기 추념식 인촌 김성수선생 21주기 추념식

1976년2월18일은 인촌선생이 서거한지 21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 오전 10시반 서울시민회관별관에서 인촌선생 21주기 추념식이 열렸다.

인촌선생 21주기추념식집행위원회가 주관, 범국민적으로 거행된 이날 추념식에서 김상만 동아일보 사장 등 유족들과 정계 언론계 종교계 학계 문화계 산업계등 각계 인사 및 시민학생 1천여명이 참석, 우리민족이 어려웠을 때 겨레의 앞길을 이끌어 주시던 선생의 높은 뜻을 기렸다. 경건한 분위기속에서 국민의례와 추모묵념순으로 진행된 기념식에서 김옥길 이화여대총장은 <선생의 큰덕은 산과 같고 선생의 업적은 삼천리 땅속 속속들이 스며 들어 있다>고 말하고 <자신보다는 민족과 국가를 앞세우시던 선생은 우리민족의 영원한 스승>이라고 추념했다.

이어 동덕여고 합창단이 부르는 <인촌선생추념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인촌기념회 고재욱씨 내외, 인촌선생이 생전에 창건해 놓았던 동아일보 고려대학 경성방직 등 10개 기관 대표들의 헌화와 분향에 이어 유진오씨의 추모강연이 있었다. 추모강연에서 유씨는 <인촌선생은 언제나 자기가 윗자리에 앉지 않고 다른 사람을 내세웠으며 밑에서 뒷받침하는 것을 그의 인생철학이자 사업철학으로 삼았다. 난경에 처할 때 그는 잠깐 표면에 나선 적이 있었지만 난경을 벗어나면 이내 후선으로 물러앉았다. 그의 지론은 민족간의 대동단결과 지방색탈피였다. 단일야당인 민주국민당을 만든 것도 모두가 대동단결 때문이었다>고 추모했다.

유진오씨는 <선생께서는 매양 모든 일을 주선하고 경영할 때는 공선사후란 말과 신의일관이란 말을 그의 신조로서 강조하였다. 선생의 이 같은 인격과 신조는 구국경륜의 사업을 일으켰을 때 언제나 유종의 미를 거두었고 유능한 인재들이 항상 구름처럼 주변에 모여들었다. 오늘의 사회가 선생께서 부르짖은 공을 앞세우고 사를 뒤로 한다는 공선사후를 표적으로 삼았다면 모든 부조리는 말끔히 씻어졌을 것이며 그 면모도 좀더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가 이제 선생을 추앙하는 것 역시 외면적 업적보다도 그 원동력인 동시에 내면적인 공선사후를 본 받는데서 더욱 큰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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