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화

금고문을 닫지 않은 뜻

1947년 4월 11일 창덕궁 인정전에서 열린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28주년 기념식. 김구(앞줄 왼쪽에서 여섯 번째), 조소앙(앞줄 왼쪽에서 일곱 번째) 등 임정 요인들과 인촌 김성수(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함께 앉아있다.’ 1947년 4월 11일 창덕궁 인정전에서 열린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28주년 기념식.
김구(앞줄 왼쪽에서 여섯 번째), 조소앙(앞줄 왼쪽에서 일곱 번째) 등 임정 요인들과
인촌 김성수(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함께 앉아있다.

1926년, 늦은 가을 밤이었다. 사랑방에 혼자 앉아 있던 仁村은 뜻밖의 전갈을 받았다. 내방객이 왔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청년이 쫓기듯 들어 왔다. 초췌한 얼굴에 남루한 옷을 걸치고 있었다. 두 청년은 仁村에게 절을 하고 다급한 듯 입을 열었다.

"선생님 도와 주십시오. 왜경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좌익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좌익을 싫어하시는 줄은 알고 있으나 도움을 청할 만한 분은 선생님 밖에는 없었습니다"

"……"

"여비가 필요합니다. 해삼위로 가고 싶습니다. 도와 주시면 평생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仁村은 괴로운 듯 묵묵 부답이었다. 잠시 후 仁村은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들이 누구이며 뭐하는 사람들인지 모르오. 알고 싶지도 않소. 아니 난 오늘 밤 당신들을 만난 일조차 없소. 내 말뜻 알겠소? 그러니 여기 있든가 가든가 맘대로들 하시요"

그러면서 仁村은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있던 금고문을 열고 뭔가를 찾다가 금고문을 채우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들 아이가 아파서 안방에 가봐야겠소. 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요"

仁村은 사랑에서 나가버렸다. 두 청년은 당장 불안해 졌다. 혹시 나가서 경찰에 신고하는 게 아닐까 해서였다.

"빨리 도망치자구. 제일 믿을 만한 분이라구? 독립운동가라면 다 도와 준다구?"

"기다려 보세. 이상하잖아? 왜 금고문을 열고 뭘 찾으시는 척하다가 잠그지 않고 그냥 나가셨지?"

그러나 그들은 그 수수께끼를 금방 풀었다.

"필요한 만큼 꺼내 가라는 거야"

"그럼 우리가 도둑이 되잖나?"

"그걸세. 나중에 우리가 잡힌다 해도 도둑질한 것으로 처리될 게 아닌가? 도와준 증거를 남기지 않으시려구 그런 걸세"

"그토록 훌륭한 분을 괜시리 의심했군. 자, 꺼내 가자구. 시간이 없어"

두 사람은 필요한 돈을 꺼내갔고 仁村은 잠시 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랑으로 돌아와 금고문을 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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