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화

돈은 잃어도 사람을 잃으면 안 된다

인촌의 신의일관 친필 인촌의 신의일관 친필

仁村의 평생 신념은 <공선사후>라는 자기 희생정신이었지만 그에 못지 않는 신념은 <신의일관>이라는 한 번 옳다고 믿는 일은 끝까지 믿는 것이었다. 仁村의 대인관계에 있어 믿음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가에 대해서는 다음에 소개하는 일화로도 엿볼 수가 있다. 이른바 <삼품사건>때 일이다.

경성방직을 설립하게 되자 仁村은 새 사옥 부지와 공장부지를 사들이고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우선 급했던 것은 직물을 짜내는 기계를 사들이는 일이었다. 그래서 仁村은 박용희전무와 지배인 이강현을 일본 <나고야>로 보냈다.

예정대로 두 사람은 <나고야>에 있던 <풍전직기회사>에 직기 기계 100대를 발주했다. 일이 끝나자 박전무는 먼저 귀국했고 잔무처리 때문에 이강현 지배인만 <나고야>에서 <오오사까>로 갔다. 직물의 원료인 면사 공급계약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강현은 면사공급을 <야기>상점과 계약했다.

그 곳에서 이강현은 귀가 번적 뜨이는 거래방법이 있다는 것을 듣고 보게 되었다. <삼품거래>라는 것이었다. 그 곳에서 이강현은 귀가 번적 뜨이는 거래방법이 있다는 것을 듣고 보게 되었다. <삼품거래>라는 것이었다. 삼품이란 면화, 면사, 면포를 말함인데 그 삼품을 거래하는데 실물 없이도 보름이나 한 달의 일정한 실거래 날짜를 예정해 놓고 미리 매매하는 거래방식이었다. 따라서 약정 기일이라면, 그날 가격으로 청산을 하게 되는데 그날의 시세보다 싸게 살 경우, 혹은 비싸게 팔았을 경우에는 돈 안 들이고 큰 이익을 보게 되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큰 손해를 보는 것이었다. 세계 제1차대전 중에는 여러 상품들이 외국에서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일본의 상품 값은 계속 뛰어올라 이것들을 사재기만 하면 막대한 이득을 볼 수 있었다. 이강현은 회사의 공금으로 이 사재기에 투기를 하여 처음에는 1만3천 여원의 큰 이득을 보았다. 물론 사복을 채우기 위해 투기를 한 것은 아니었다. 초창기 회사의 자금난을 조금이나마 자기 힘으로 해소해 볼려고 손댄 것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부터는 실패를 거듭하게 되었다. 이미 전쟁은 끝났고 전쟁 당사국들은 전후복구를 서둘러 막혔던 삼품들이 쏟아져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강현이 손 댔을 때는 바로 그 특수경기가 하락하고 있을 때였는데 국제정세나, 경기, 상품의 가격동향을 잘 몰랐던 이강현은 그것도 모르고 처음 이득 본 것에 연연하여 다시 투자하고 또 투자하여 마침내는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 의도와는 달리 10만원의 손실을 보고 오도가도 못한 채 <오오사까>의 여관방에 남게 됐던 것이다. 당시 <경방>의 설립 자본금은 100만원이었으며 첫 불입금은 25만원이었다. 10만원은 첫 불입금의 5분의 2가 아닌가.

이 소식을 전해 들은 仁村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仁村뿐 아니었다. 회사의 모든 중역들도 마찬가지였다. 연일 중역회의가 열리고 대책을 숙의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회사는 이제야 설립되어 걸음마도 하기 전입니다. 공장 건설은 차치하고라도 사옥신축도 겨우 기초공사를 끝낸 상태입니다. 그런 마당에 일본 땅에 가서까지 투기를 하여 엄청난 회사공금을 다 날려 버렸으니 이젠 문을 열기도 전에 파산을 맞이한 것입니다 대체 이 책임을 누가 지겠습니까?"

중역들의 비난에 仁村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강현은 바로 자기와 손잡고 이 사업을 시작한 창업동지요 간부사원이었던 것이다.

"끝장이 난 것입니다. 무슨 돈으로 신축하는 사옥을 완공할 것이며, 무슨 돈으로 공장을 짓고 기계를 들여 오겠습니까?"

중역들은 화가 나서 이강현을 비난했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진 것이었으니 쓸어담을 수도 없었다. 도저히 재기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 다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당장 묘안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신축 중인 새 사옥의 자재비와 인건비를 댈 수 없어 건축 중지를 결정하자 업자측은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중론은 별 수 없으니 파산을 선언하고 회사를 해산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새운 仁村은 마지막 중역회의에서 자신의 솔직한 심경과 각오를 밝혔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어찌 그런 사람을 믿고 함께 일을 했느냐 한다면 할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실수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강현씨는 사사로운 욕심보다는 자본금이 달리는 우리 회사의 실정을 알고 회사를 위해 했던 일이 결과적으로 그런 엄청난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건 투전판의 투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본심은 가상한 일이었는지 몰라도 그 방법이 틀렸습니다. 책임은 면할 도리가 없습니다"

"압니다. 그의 실수를 따지기 전에 우선은 회사부터 살리고 봐야 하지 않겠소? 며칠동안 거듭 거듭 생각을 했으나 나는 절대로 이 회사의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설립허가를 받을 때 일본인들은 우릴 얼마나 멸시했습니까? 주식의 주자도 모른다느니 공장의 공자도 모르니 허가해 주어도 얼마 안가 문을 닫을 거라 했습니다. 그들의 소원대로 해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의 자금을 기부하듯 한 주 한 주 사준 전국 각처의 애국지사, 그분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습니다. 3.1만세운동으로 우리 민족에게는 지금 새로운 활력이 퍼지고 있습니다. 그 기운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어떤 수를 쓰던 회사는 살려 볼 테니 날 믿으시고 이런 때일수록 합심하여 난관을 극복해 나갑시다."

그의 어조는 비장했다. 중역들은 말을 못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전무인 박용희가 물었다.

"결코 문을 닫을 수 없다는 결심과 각오는 우리 모든 중역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난관을 벗어나려면 자금이 있어야 합니다. 그걸 어떻게 해결하시려는지"

"내게도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니 다 맡겨주시오."

"알겠습니다"

비로소 모든 중역들은 안도의 숨을 길게 내 쉬었다. 그러자 감사인 장두현이 仁村에게 물었다.

"이강현씨는 어떻게 처벌을 하시겠습니까?"

"그 문제도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처벌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옛? 그게 무슨 말씀이오? 읍참마속이란 고사도 있습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지기로 했습니다. 그리니 그가 저지른 과오도 전부 내가 진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이강현은 절대로 필요한 인재입니다. 집을 짓고 있는데 기둥을 빼낼 수는 없습니다. 기둥이 빠지면 그 집은 주저 앉아 버립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줍시다. 방직사업에 관한 한 그는 조선의 유일한 기술자입니다. 여러분이 그의 실수를 한 번만 덮어주면 이강현씨는 그 실수를 거울삼아 최선을 다해 일할 것입니다. 돈 잃고 사람까지 잃는 우는 범하지 맙시다. 돈이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다시 들어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한 번 잃으면 찾기 힘든 것입니다."

仁村의 그와 같은 말에도 중역들은 쉽게 누그러지지 않았지만 仁村의 거듭된 간곡한 설득으로 그들을 진정시키고 이강현을 처벌치 않기로 했다. 仁村의 믿음은 헛되지 않아 이강현은 그 뒤에 열성을 다하여 경성방직이 확고부동한 기업체로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되었다. 仁村의 사람보는 안목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모든 사람들은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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