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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촌선생의 ‘친일’ 시비에 대해

仁村은 민족의지도자였지 친일인사가 아니었다
진실 애써 외면하고 역사왜곡한 책임져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이하 규명위)가 仁村 金性洙선생을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포함시킨것은 비이성적이고 반역사적 행위로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규명위는 인촌 선생 명의로 친일신문에 게재된 글, 강연, 친일단체의 간부 취임을 통해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다고 규정했다.

신문에 게재된 글의 경우 규명위는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매일신보와 경성일보를 근거로 내세우고 있으나 두 신문은 우리민족을 위한 언론기관이 아니라 일제의 앞잡이로, 한반도 통치의 수단에 불과했다.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에 근무했던 한국인 기자들은 해방 후 자서전 등릉 통해 '매일신보와 경성일보가 일제말 전쟁 시기 왜곡, 과장, 날조되 허위의 기사로 민심을 현혹시킨 일제의 선전선동물이었다'고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았다.

인촌 선생 명의로 된 글은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에 게재된 내용들로 인촌의 글이 아닌 대필자의 작문이었다. 인촌 선생에 대한 규명위의 친일 주장은 기본 자료의 신빙성 여부에 대한 기초적 검토도 없이 내린 비상식적, 비학문적 판단이다.

일제의 혹독한 탄압을 겪었던 원로학자들이나 당시 보성전문학교 제자들이 한결같이 “인촌 선생이 학병에 나가라고 한 사실이 없다”고 또렷하게 증언하며 항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국가기관인 규명위가 일제의 최대 피해자이자 학병 당사자인 이들의 생생한 증언에는 귀를 막고 일제의 하수인이었던 총독부의 기관지를 맹목적으로 인용하여 상식에 반하는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분노를 금치 못한다.

인촌 선생은 일제시대 줄곧 민족자강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 언론과 교육, 산업에 헌신해 왔으며 3.1운동의 태동을 지원했고 일제의 귀족 제의를 거절했으며 독립운동가들에게 군자금을 지원해 온 민족지도자였지, 결코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적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인촌기념회는 규명위의 결정이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 역사의 한 단면을 왜곡해석한 잘못된 판단으로 규정한다. 아울러 인촌기념회는 ‘결정취소 청구소송’등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며 규명위는 또 다른 역사왜곡에 대한 역사적 심판을 받아야 하며 그 책임 또한 져야할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2009년 11월 27일 인촌기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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