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hon Kim Sungsoo -A Korean Nationalist Entrepreneur 
 
 
 
 




제28회-언론 문화


한글학회


[공적]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하던 1908년 문맹 타파와 나라글 보존을 통해 국 권을 되찾기 위해 창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학술단 체. 1926년 ‘한글날’의 시초인 ‘가갸날’을 제정했다. 1929년 조선어사전 편찬회를 조직한 뒤 1933년 ‘한 글 맞춤법 통일안’을, 1941년 ‘외래어 표기법 통일 안’을 펴내 한글 현대화의 기초를 닦았다. 광복 후 1947년 ‘큰사전’ 1권을 낸 뒤 1957년 6권을 모두 완 간해 최초의 국어대사전을 선보였다. 한글 전용, 한 글 기계화, 우리말글 바로 쓰기, 학술대회, 해외 한 국어 교사 연수 등 보급 및 진흥 사업에 매진했다. 국내 최초의 국어-언어학 학술지인 ‘한글’(1932년 창간)과 말글 교양잡지인 ‘한글 새소식’(1972년 창 간)을 꾸준히 내고 있다. 최근 한글날 공휴일 지정, 국회 깃발 휘장 배지의 한글화를 주도했다.


“한글학회가 외부의 큰 상을 받는 건 처음이네 요. 사실 그동안 역사와 활동에 비해 뒤늦은 감이 있지만 반가운 일입니다.”

11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한글회관에서 만난 김종택 한글학회 회장(77·경북대 명예교수)은 “한글학회의 수상은 인촌상의 위상에 걸맞은 것” 이라며 웃었다.

1908년 창립돼 106년의 역사를 가진 한글학회는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한글의 요람 역할을 충실 히 해왔다. 한글날 제정, 맞춤법 및 외래어 표기법 공표, 한글큰사전 제작, 한글 전용 운동 등 한글학회 의 역사는 근대 이후 한글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특히 일제강점기 당시 한글을 지키기 위해 고 군분투한 것은 한글학회가 단순한 학술단체가 아 니라 민족 각성과 독립을 위해 노력해온 단체임 을 보여준다. 조선어학회는 1942년 ‘조선말 큰사 전’ 출판에 착수했다. 당시 한글 교육 금지, 창씨 개명 등을 진행하던 일제는 사전 편찬이 가장 힘 있는 민족운동이라고 보고 그해 치안유지법 위반 으로 학회 관련자 33명을 대거 함흥형무소에 구 금하는,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킨다.

“한글이 세종대왕 창제 이후 그냥 물과 공기처 럼 우리에게 주어진 것 같지만 일제강점기 때 선 각자들의 지난한 노력과 투쟁을 거쳐 정리되고 현대화되면서 지금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입니다. 한글이 정리됐기 때문에 국민 교육이 가능했고 두 세대도 지나지 않아 지금처럼 성장하게 된 원 동력이 됐습니다.”

한글학회 주도로 29일 서울 세종로공원에서 ‘조 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이 제막된다. 세종대 왕 동상과 50m 거리를 두고 있는 이 기념탑은 조 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된 33명과 고초를 겪은 8명, 재정적 법률적 도움을 준 16명을 기린다. “이번에 기념탑 건립으로 조선어학회 사건의 역 사적 의미를 되살릴 수 있게 됐습니다. 인촌도 한 글학회에 많은 재정적 지원을 해준 인물이라는 게 당시 실무자의 증언과 자료로 입증돼 기념탑 에 이름이 들어갑니다.”

한글학회는 현재 부산 등 10개 국내 지회와 일 본 간사이 지회, 중국 헤이룽장 성·저장 성 지회 등을 두고 있다.

“세계 300여 개 대학에 한국어학과가 있고 2000여 곳에 한국어 교육기관이 있어요. 한글학회도 세계 화에 발맞춰 한글 해외 보급에 힘써 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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