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hon Kim Sungsoo -A Korean Nationalist Entrepreneur 
 
 
 
 




제24회-공공봉사부문


김천주(대한주부클럽연합회 회장)


[공적]
생활 속에서 새로운 소비자보호 어젠다를 발굴해 실천을 이끌어 낸 사회운동의 대모다. 1957년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서울시청에서 근무하다 1968년 대한주부클럽연합회 총무를 맡으면서 소비자운동에 뛰어들었다. 1976년에는 4개 여성단체가 모여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를 결성했고 1979년 소비자보호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1977년부터 저학력 중고령 여성의 사회진출을 돕기 위해 가사도우미 간병인 탁아모 출장요리사 등을 직업훈련을 통해 1만여 명 배출했다. 1969년부터 ‘신사임당의 날’을 제정해 서예·미술 분야에서 3000여 명의 여성 예술가를 키워냈다. 이 같은 공로로 1987년 국민훈장 모란장, 1990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43년 동안 사회운동을 하면서 매일 ‘보람’과 ‘기쁨’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또 상을 받게 됐네요.”

13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주부클럽연합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천주 대한주부클럽연합회 회장(77·사진)은 “배운 사람이라면 당연히 사회에 봉사할 의무가 있다”며 “해야 할 일을 했는데 높이 평가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겸손하게 수상 소감을 밝혔다.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1957년 이화여대 사회사업과를 졸업한 이후 평생 사회운동가의 길을 걸어왔다. 늘 한복을 입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 회장은 ‘소비자’라는 개념조차 없던 1960년대부터 주부들을 중심으로 한 소비자운동을 시작했다. 1976년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를 창립했고 1979년에는 ‘소비자보호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이후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한편 국산품 애용 운동과 자원절약 운동을 펼쳐 국력 향상에도 기여했다. 김 회장은 “6·25전쟁 이후 국내 기업이 제대로 성장하기 전이라 불량품이 많이 유통됐다”며 “연탄도 쉽게 깨지고 석유곤로도 자주 폭발하는 것을 보고 소비자운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기업과 공장을 직접 찾아다니고 주부클럽을 조직해 소비자 교육을 시작했다. 김 회장은 “물건을 살 때 가격뿐 아니라 품질표시도 확인할 것을 가르쳤다”며 “소비자운동은 주부들이 사회구성원으로 목소리를 낼 기회이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는 1985년 화학물질 범벅이던 양조간장과 발암물질이 들어있던 색소 단무지를 고발했던 일. 당시 기업들의 협박이 쏟아져 경찰이 집을 지켰고 자녀들은 학교에 갈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굳은 의지로 운동을 지속했던 이유에 대해 김 회장은 “전쟁 당시 친구들은 폭격을 맞거나 납치되어 죽었는데 난 지금까지 살아있다”며 “살아남아 공부를 했으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98년 금 모으기 범국민운동, 2007년 재래시장 활성화운동을 벌여 주부들의 힘을 공동체의 힘으로 키워내기도 했다. 김 회장은 “주부들의 의식이 높아져야 나라가 발전하고 자녀교육을 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며 “소비자운동은 곧 여권신장운동이자 경제살리기운동이었다”고 평가했다.

여성 일자리를 만들어 주부들의 사회 진출을 돕는 데도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가사도우미(파출부) 요리사 간병인 등 주부들에게 취업 교육을 시키고 일자리를 알선했다.

김 회장은 “사회단체를 정치의 디딤돌이 아니라 희생과 봉사하는 자리로 생각하는 후배가 대한주부클럽연합회의 전통을 이어주었으면 한다”며 앞으로의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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