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hon Kim Sungsoo -A Korean Nationalist Entrepreneur 
 
 
 
 




제24회-산업기술부문


김정식(대덕전자 회장)


[공적]
한국 전자산업의 기초체력인 핵심부품 기술개발에 헌신해온 선구자. 1956년 서울대 전자통신학과를 졸업한 후 1965년 대덕산업(대덕GDS의 전신), 1972년 대덕전자를 세웠다. 인쇄배선회로기판(PCB)이 전자제품의 핵심부품이 될 것임을 내다보고 45년 동안 PCB 개발 한 길을 걸어 왔다. PCB는 라디오, TV, 휴대전화 등 거의 모든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핵심부품. 일본 한국을 오가며 기술을 배우기 위해 맨발로 뛰었다. 그 결과 PCB의 국산화에 성공했고 대덕은 수출 기업으로도 성장했다.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세계적 기업이 나올 수 있는 기초를 닦은 셈이다. 1991년 사재를 털어 해동과학문화재단을 설립한 이래 지금까지 과학인재를 키우는 데에도 헌신하고 있다.


"인촌상 수상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언론과 교육에 힘써 오신 인촌의 뜻을 받들고 앞으로 후대를 위해 더 노력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대덕전자 김정식 회장(81·사진)은 한국전자산업의 선구자로 불린다. ‘전자’라는 말 자체가 생소하던 시기에 전자통신을 공부했고 부품사업을 일으켜 한국이 정보기술(IT) 신화를 창조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닦았기 때문이다. 1965년 대덕산업(대덕GDS의 전신)을 설립한 이래 45년 동안 전자제품의 핵심부품인 인쇄배선회로기판(PCB) 개발 한 길을 걸어 왔다. 1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해동과학문화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김 회장은 “라디오, TV, 휴대전화 어디에도 PCB가 들어간다”며 “PCB 개발 한 길이라고 해서 똑같은 제품이 아니다. 새로운 제품이 나올 때마다 거기에 맞는 첨단 PCB를 개발하며 한국 전자산업의 역사를 같이 해왔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전자산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6·25전쟁과 대학 은사의 꾸지람 덕분이었다. 서울대 전자통신학과 3학년이던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해 공군 통신장교로 입대했다. 이때 새로운 첨단 통신장비에 눈을 떴다고 한다. 하지만 전역 후 처음 택한 직업은 철강사업이었다. 김 회장은 “1963년 어느 날 대학 은사이자 전우였던 오현위 교수님이 ‘전공을 버리고 왜 철강 도매업을 하느냐’며 꾸지람을 하셨다”며 “그게 통신장비 산업에 뛰어든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통신장비 사업을 하면서 늘 PCB가 골칫거리였다.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회장은 “일본을 오가며 기술을 배웠는데 그때의 고생은 말로 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1972년 대덕전자를 세워 산업용 PCB를 개발한 결과 1975년 국내 최초로 양면 PCB 제조에 성공했다. 1983년 수출 200만 달러를 시작으로 2000년에는 수출 2억 달러 기록을 세웠다.

1991년부터는 해동과학문화재단 설립을 시작으로 과학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그동안 후원사업 규모만 105억 원이 넘는다. 대덕전자가 위치한 경기 안산시의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1996년 장애인 근로작업시설인 ‘해동일터’를 지어 대덕 계열사의 작업복을 만들게 했다.

김 회장은 “해외에서 소니, 파나소닉 간판이 삼성, LG로 바뀌는 걸 보면 뿌듯하고 전자부품을 시작하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계속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우리 회사 부장급까지 스마트폰 나눠주고 공부하라고 했다”며 “많은 과학 인재가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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