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hon Kim Sungsoo -A Korean Nationalist Entrepreneur 
 
 
 
 




제12회-공공봉사부문


원경선선생
원경선선생은 16세가 되던 해 부친이 별세하자 누에치기로 농부의 첫발을 내딛었다.
1955년 경기도 부천의 1만평 땅에 농업공동체 풀무원을 설립했다. 쇠를 녹이는 도가니에 산소를 불어놓는 도구인 풀무.버려진 인생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자는 뜻으로 만든 풀무원에 선생은 백여명의 부랑자를 조건없이 받아들였다.

선생은 1976년 화학비료와 농약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 바른 농사를 이끌자는 뜻으로 "정농회"를 전국적으로 결성하고이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 현재의 풀무원 자리인 경기도 양주로 옮겨왔다. 선생은 풀무원 설립 이후 무공해 유기농법의 개발 및 보급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농약의 해독과 이로 인한 환경오염이 우리의 생활터전을 파괴할 것이라는 선구적인 각성에 의한 것이었다.

선생은 지난 20년간 한번도 대문을 잠근 적이 없다. 모든것을 나눠 가지니 잃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선생은 정농회 창설에 이어 이기적인 삶을 버리고 더불어 사는 삶을 실현하자는 목적으로 풀무원 식구들을 모아 "한삶회"를 설립하고 전재산을 이 모임에 기증했다.

"가족의 사랑을 무조건적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족이 다른 가정에 대해서는 배타적이라는 모순이 있죠. 그것마저 활짝 열어젖힐 수는 없을까요"

선생의 이런 말 가운데서 한삶회를 설립한 큰 뜻이 엿보인다.

1958년부터 홀트양자회를 통해 입양아,정박아,고아 등 사회의 어두운 곳에 있는 어린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일에 앞장서 온 선생은 1975년부터 3년간 이 기구 이사를 역임했다.

또한 선생은 1990년부터 사단법인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에 이사로 몸담아 왔으며 이 기구는 국내외 굶주림 사람들을 위해 매년 30,40여억원을 모금하는 성과를 보였다.

선생이 이같은 공로등으로 92년 녹색인상, 95년 유엔환경계획글로벌 500상, 97년 국민훈장동배상을 받았다.


문학부문


김춘수선생
김춘수선생은 한국 현대시에 "무의미시"라는 새로운 시적 모델을 제시했다. 무의미시는 자연에 대한 감흥이나 정신의지를 비유적 이미지를 통해 노래한 시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실험이다. 선생 자신의 말을 빌면 "의미로 응고되기 이전의 세계"로서의 시를 구현한것이다.

48년 시집 "구름과 장미"로 데뷔한 선생은 50년대까지 존재론적이며 서정적인 시를 썼다.선생의 작품중 가장 널리 애송되는 "꽃"은 당시의 대표작.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존재 이전에는 언어도 없다"는 명제를 시로써 충실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그러나 60년대 중반부터 선생의 시세계는 급격히 변모한다. "시와 철학이 다른 점은 무엇인가.시는 철학으로 환원되기 이전의 상태로 사물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 이 시기 선생의 화두였다.
시 속에서 기존의 관념을 배제한다는 뜻으로 스스로 '무의미시'라고 이름붙인 이 새로운 실험은 25년에 걸쳐 완성된 연작시 '처용단장'으로 결실을 맺었다.

선생의 무의미시는 인간의 내면의식을 회화적으로 묘사했다는 평가를 얻는다. 초현실주의 화가가 그림으로 인간의 혼돈된 무의식세계를 그리듯 선생은 언어로 무의식세계를 서술했다. 통일성 없이 해체된 이 언어적 그림들은 위로는 이상의 아방가르드적인 경향과 잇닿아 있으며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징후를 선구적으로 보인 것이기도 하다. 선생의 시는 특히 후배시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으며 많은 모작을 낳았다.

'처용단장'의 완성으로 언어해체라는 극단까지 몰아붙였던 '무의미시'실험을 끝낸 선생은 최근 들어 "마음가는대로, 느끼는대로"사물의 모습을 노래하는 연작시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시는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 있다"고 말하는 선생은 끝없는 자기부정을 통해 '시란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모범을 보여줬다.

'구름과 장미''꽃의 소묘' '늪' '들림, 도스토예프스키'등 14권의 시집과 독특한 시적 혜안이 번득이는 시론집 '시의 위상', 자전소설 '꽃과 여우'등을 펴냈다.


특별상


김동순
김동순선생은 27세때 도미, 조지아대에서 문화인류학박사학위를 받고 71년부터 테네시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미국학계에서 돼곡된 한국의 모습을 바로잡는데 평생을 헌신해왔다.
선생이 미국에서 인류학자로서 활동을 시작할 즈음 한국학은 그야말로 구색을 맞추기 위해 끼워주는 정도였다. 일본이나 중국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수도 많고 기본적으로 그 문화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에서 출발하는데 비해 한국을 연구하는 몇 안되는 학자들은 한국이라는 소재위에 군림하는 자세였다. 연구 주제도 '기지촌 문제'같은 어두운 면만 부각됐다.

왜곡된 고국의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선생은 81년 미국 인류학회안에 한국학회를 창설했다. 미국 인류학회 안에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한 학회가 생긴 것을 이 때가 처음이었다. 한국학회에는 현재 1백여명의 인류학자가 활동중이며 그중 절반 가량이 한국에 관심이 많은 서양학자들이다. 한국학회의 활동으로 매년 미국 인류학회가 열릴때마다 한국에 관한 프로그램이 마련돼왔다. 유럽학자들은 한국학회를 모델로 학회를 만들기도 했다.

선생은 학문적으로는 미국 인류학계 안에서 저서와 논문을 가장 많이 쓴 교수중 한명으로 꼽힌다. 특히 한국의 노사관계에 대한 서구의 편견을 씻어낸 'The Culture of Korean Industry', 이산가족 문제를 아무도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던 1980년 초 수많은 이산가족을 직접 만나고 관련 문헌과 자료를 집대성해 1988년 펴낸 'faithful Endurance'등이 그의 대표적인 영문저서이다.

선생이 지난 5월 한국 근대화의 거목인 인촌김성수선생의 삶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영문전기 '한국의 민족주의 기업인:김성수의 생애사, 1891`1955'(뉴욕주립대 출판부)를 펴낸 것은 현대 한국의 대표적인 민족주의 지도자의 생애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서양에 올바르게 알리겠다는 충정에서 비롯됐다. 근현대 한국 지도자에 대한 전기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유수한 대학출판사에서 간행된 이 책은 미국 학계뿐 아니라 세계의 지식인 사회에서 굴절과 편견으로 점철된 한국 민족주의와 근대화의 역사를 바로잡는 길잡이가 됐다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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