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hon Kim Sungsoo -A Korean Nationalist Entrepreneur 
 
 
 
 




제11회-교육부문


현승종선생
현승종선생은 광복 이듬해인 1946년 고려대학교 법학과 전임강사로 교직생활을 시작한 이래 50년 넘어 우리나라 교육의 민주화 인간화에 헌신한 교육계 원로이다.
법사상사,법사학,비교법 및 민법분야에서 탁월한 연구업적을 남긴 선생은 한편으로 교육행정가로서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교내보직은 물론 대학총장과 재단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원칙과 인간화의 높은 교육정신을 구현해온 가장 존경받는 교육자이다.

4.19현명당시 선생은 고려대 학생처장으로 데모행렬의 선두에서 제자들의 신변안전에 정성을 다하는 제자사랑의 실천자였고 고양학 부장시절에는 원칙과 준법을 몸에 익히고 윤리 도덕을 함양하는 인간화 교육과 이를 뒷받침하는 인문주의 교양교육에 힘썼다. 또 도서관장 재임시에는 유명장서들을 유치하여 대학도서관으로서의 품격을 높이는 탁월한 업적을 쌓기도 했다.

1974년 성균관대 총장을 시작으로 선생은 교육행정가 학교경영자로 전신했는데 1986년 한림대 총장, 1991년 한국교총 회장, 1993년 건국대 재단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선생의 교육행정방침은 공선사후의 원칙이었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며 교직원은 교육목적 달성에 봉사하는 이행보조자라는 기본입장에서 대학안에 내재해있는 사적요인의 불식에 뚜렷한 성과를 올렸다.

또한 선생은 일찍부터 학사운영에서 수장의 독단을 경계하여 의사 결정 과정에는 항시 보직교수등의 다수의견을 모으는 대학민주화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이렇게 결정된 의사는 변경 또는 번복하지 않아 그의 학사행정은 항상 예측가능하고 제도적 안정성을 확보하며 나아가 수장에 대한 신뢰를 구축했다. 원칙을 중시하되 그 원칙은 항상 대학민주화와 인간화 교육을 향하는 그의 교육철학은 세기적 전환기의 오늘의 우리나라 교육계의 한 사표로 기록될 것이다.


산업기술부문


이용태
이용태선생은 70년대이래 우리나라 정보기술의 개발, 정보산업의 육성 및 정보사회 구현에 앞장선 선구적 공로자이다. 정보산업의 기반기술을 개발한 과학자로서, 정보사회의 정책방안을 제시한 산업정책가로서, 또는 우리나라 최초의 컴퓨터회사를 설립 운영한 기업인으로서의 선생의 공적은 우리 한국의 정보화시대의 향도자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1970년대초 한국과학기술연구소에 재직하며 선생은 최초의 한글입출력 터미널인 CIA시스템을 연구 개발했고 이후 한글CRT터미널의 개발에도 개가를 올렸으며 서울시내 교통체계의 전산화를 위시하여 정부 및 공공기관의 전산화를 이룩한 과학 기술자로서의 역량을 과시했다. 또한 선생은 주전산기의 국산화, 행정기간의 퍼스널 컴퓨터 보급, 행정관서간의 국가행정전산망 구축등의 행정정보화를 주도한 산업정책가로서 국가경쟁력 강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밖에 선생은 1996년 한국정보엑스포를 처음으로 개최, 한국정보산업의 세계적 위상을 높이고 미래정보산업과 생활양식의 변천상을 보여주었으며 세계최고의 소프트웨어단지 조성을 위한 미디어밸리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정보화사회를 앞당기기 위해 정보화조기교육에 힘쓰고 있는 것도 세계정보산업 강국의 실현을 위한 원려의 소산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업인으로서의 업적을 꼽을 수 있는데 선생은 1980년 1천만원의 자본금과 7명의 직원으로 ㈜삼보컴퓨터를 설립, 우리나라 최초로 퍼스널컴퓨터를 생산했다. 삼보컴퓨터는 오늘날 연간1백만대의 생산시설과 미국 영국 중국 등지에 현지 생산시설을 갖춘 국제기업으로 고속성장을 거듭했으며 산하 16개 벤처기업을 통해 워크스테이션, 무선호출, 인터넷서비스, 회선임대사업 등 다양한 정보통신분야를 망라하는 세계적인 정보통신 전문그룹으로 웅비하고 있다.


학술부문


조기준
조기준선생은 1946년이래 50년여의 세월을 대학강단을 지키며 후진양성과 학문연구에 매진해온 한국경제학의 개척자이다. 광복후 사회혼란의 소용돌이속에서 맣은 대학들이 마르크스 경제학과 유물사관의 열병을 앓고 있을 때 선생은 독일 역사학파와 막스 베버의 경제사학 및 방법론을 도입하여 한국경제학의 새로운 학풍과 방향을 제시했다. 또한 선생은 50년대초 서독과 미국에 유학중 베르린대학에서 한국근대 경제사를 강의하여 전후 서구학계에 한국경제학을 처음으로 소개했다.

1957년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의 창설에 참여한 선생은 한국사회과학서 간행을 주관했고 그중 <일제하의 한민족생활사>를 집필했으며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간행 <한국문화사대계>에 <개화기의 민족기업인 활동사>를 집필하기도 했다. 또한 선생은 1962년 한국경제사학회 초대회장으로 조선후기 경제사의 공동연구를 기획하여 스스로 실학자들의 근대적 경제사상을 탐구하는 여러편의 저술을 남겼으니 <한국자본주의성립사론>(73),<한국기업가사 연구>(74),<한국의 민족기업>(75) 등의 저서는 이 시기에 발표된 논문을 정리한 것이다.

1982년 고려대에서 정년퇴임한 선생은 끊임없는 연구와 국내외에서의 특강 등을 통해서 한국경제사학의 정립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해방후 한국경제의 전개과정을 밝힌 <한국경제발전사>(91)를 위시하여 <한국경제사신><사회경제사>(95) 등 저서들은 모두 선생의 정년후 수작들이다.
이처럼 한국경제사학의 정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온 선생은 올해부터는 그 연잔선상에서 북한 사회주의경제의 전개과정의 연구에 착수하였으니 선생의 학자로서의 정렬의 한 평생은 후학들에게 깊은 감동으로 높이 창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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