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hon Kim Sungsoo -A Korean Nationalist Entrepreneur 
 
 
 
 




제10회-교육부문


김동극선생
한국특수교육의 선구자로 불리어지고 있는 김동극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 정신지체특수학교인 대구남양학교 (초,중,고)의 설립을 주도, 그 초대 교장으로 부임하여 <교육부 지정연구학교>로 지정받아 10년간 교육과정, 교과서, 지도지침서, 교재교구, 새로운 채료교육방법 등의 개발로 특수교육 경영에 필요한 기본자료의 연구개발에 크게 기여하였다.

뿐만아니라 한국특수교육협회장직을 10년 연임하면서 특수교육진흥법 제정의 산파역으로서 뒤떨어진 한국특수교육 촉진을 위한 법적 제도적 기반조성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무렵 사회적으로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던 특수교육을 공교육으로 추진할 수 있게한 진흥법의 마련은 특수교육사상 획기적인 일로서 이를 제정 하는데 김선생의 노고는 지대했다.

수원자혜학교(정신지체 초,중,고)교장으로 재직할 때는 장애인의 치료교육의 연구개발에 크게 공헌했으며 정년퇴직후 수봉재활원(정신지체인재활시설)설립을 주도, 그 초대원장으로 40명의 중요장애인과 동거하면서 철저한 자연식으로 그들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 이와같은 연구 실천결과는 국내외에 널리 알려져 그 요청에 따른 강연과 저술등으로 연구성과가 널리 보급되고 있다.

그는 또한 아동문학가로서 30여년전부터 글짓기 교육을 통한 전인교육을 실천해 왔다.
이와 같이 김선생은 인성교육, 특수교육, 치료교육,사회복지교육등 여러가지 영역에서 개척적인 연구 실천으로 교육현장의 등불이 되어온 공로자이다.


산업기술부문


허진규선생
허진규선생은 1967년 일진전기공업㈜를 창립하여 현재까지 일진그룹계열기업에서 생산해 온 품목의 90%이상을 자체기술로 개발하고 우리나라 국가기간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을 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 기술이전을 기피하는 극한기술개발에 지속적인 투자와 열정으로 국산화에 성공함으로써 수입대체효과는 물론 수출을 통한 외화획득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특히 지난 198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 공동개발에 착수하여 1990년 5월에 국내 최초로 '공업용 합성 다이아몬드'의 양산에 성공, 고내마모성 재료인 다이아몬드 결정체의 생성기술은 물론 여타 결정체의 생성기술로도 응용이 가능해 관련업계에서는 구조 세라믹분야의 쾌거로 평가하고 있다.
이에 앞서 1986년 일진 부설연구소와 서울대 생산기술연구원이 공동 개발한 '전해동박'은 당시까지 전자부품의 세계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일본에 충격을 주는 등 우리나라 신소재분야 발전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서비스가 요구되는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에 필수적인 대용량 NO.7 신호중개교환기의 개발과 함께 차세대 지능망시스템인 가상사설망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신호망 및 지능망 구축을 위한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활발히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990년6월 서울대학교에 국내 산학연 협동의 표본인 <신소재공동연구소>를 건립하여 기증함으로써 우리나라 산학협동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한바 있다.


공공봉사부문


강성숙수녀
강성숙(로욜라) 수녀는 1950년 평양의 제2여고를 졸업하고, 1.4후퇴 시 단신으로 월남하여 전란을 통한 체험 과정을 통해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와 사랑의 삶을 살고자 성직자의 길을 택했다.
우리나라 농아교육의 표본이 된 '충주농아원'과 '충주농아학교'를 설립 운영한 강수녀의 30여년간의 봉사와 헌신은 농아들의 생활에서부터 직업재활 터전과 교육시설, 새로운 교육방법의 개발, 농아인의 사
회참여, 사회적응훈련 등에 이르기까지 아니 미친곳이 없어 '농아들의 대모'로 불리고 있다.

1985년 고 이방자 여사의 특별한 부탁과 위임으로 지체장애인 직업재활 특수학교 법인인 '명휘원'의 운영 책임을 맡아 10년간 지체 장애인의 재활과 복지와 교육과 이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는데 헌신, 300여 지체장애인의 자활과 복지교육의 산터전으로 키웠다.

'88년도 서울 장애인 올림픽 대회에는 50여명의 장애인 선수를 출전시켜 금.은.동메달은 물론 '도전과 극복' '평화와 우정'이란 휠체어 마스게임을 펼쳐 보임으로써 국내는 물론 세계장애인들과 정상인들을 감동시킨 바 있다.
또한 서울 종로2가 YMCA뒷편 명휘원 종로복지관에서 10년전부터 파고다공원 중심의 무의탁 노인 100여명에게 매일 점심을 대접해오고 있다.
강수녀는 명휘원 원장과 명혜학교의 교장을 정년퇴임한 후 현재 서울 송파구 신천동 성당에서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문학부문


김종길선생
김종길선생은 1947년에 처녀작을 발표한 이후 꾸준히 정감있고 기품있는 시를 발표해왔다. 시인으로서의 김선생의 미덕은 언어에 대한 엄격성에서 현저하게 드러나다. 낱낱이 시어를 어격히 다루며서 실험적인 시가 흔히 시도하는 의미파괴를 경계하고 의미론적 엄밀성과 음향적 효과를 최대한으로 결합한다우리 근대시에서와 같이 고전주의 전통이 풍요하지 못한 풍토에서 그의 시는 시가 있어야하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귀감이 되어준다.

시인으로서의 그의 엄격성은 그를 과작의 시인으로 남아 있게 하였다. 이 또한 졸속적 다작주의와 물량주의가 풍미하는 현재의 문학 상황에서 우리에게 교시하는 바가 크다.
시인으로서의 업적 이외에도 김선생은 이론과 실천을 병행한 뛰어난 비평적 업적을 이룩하고 있다. 엄정한 언어로 시의 세계를 분석하고 해명하고 있는바 역시 과작이지만 시론이 풍요하지 않은 우리의 비평풍토에서 독보적인 존재이며 문학교육에 기여한바 크다. 그 밖에도 그는 영문학자로서 현대 영시를 우리말로 옮기는가 하면 우리시의 영역에서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이와같은 문학 매개적 공헌의 구체는 역대 한국의 한시를 영역한 역시집 그리고 영문으로 씌어진 영문 시론집에 잘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이 시인으로서의 공적에 더하여 시론가, 문학 매개자, 우리 문학의 해외 소개자로서의 그의 공적이 지대하다.


학술부문


박송배선생
박송배선생은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전자공학분야의 석.박사 학위를 받고 과거 40여년간 서울대학교, 미국오레곤주립대학 및 한국과학기술원에서 후진양성과 학술연구에 헌신하였다. 그간 과기권에서 회로이론과 초음파 영상분야에서 박사 41명, 석사102명을 배출하였으며 총 200여편의 독창적인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 및 학술대회에 발표했다. 박선생은 컴퓨터를 이용한 회로설계에 관한 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1983년 종래 오랫동안 사용되어오던 회로망방정식 형성의 하나인 MNA보다 간단한 새로운 축소변형 MNA를 제안하여 학계의 주목을 끌었다.

박선생은 1982년 부터는 초음파진단장치와 관련된 초음파영상분야에 연구의 폭을 넓혔으며 이 분야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독보적 존재일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가장 두두러진 것은 이론적으로 최고의 축방향해상도를 얻을 수 있는 매 샘플링점에서의 디지털 접속방법이며 현재세계의 유수한 업체들이 유사한 방법을 채용하고 있다.

박선생은 미국 전기 및 전자공학회 한국지부장, 한국전자공학회 회장, 대한의용생체공학회 회장등을 역임, 학회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국제적으로는 과거 10년간 미국 학술전문지 "Ultrasonic Imaging"의 편집위원 및 국제초음파영상학술대회 운영위원으로 활약하여 이 분야에서의 한국의 위상을 드높였다. 한때 과기원 부원장으로 재임하면서 학사발전에도 기여한 바 있으며 현재 명예교수로서 교육 및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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