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hon Kim Sungsoo -A Korean Nationalist Entrepreneur 
 
 
 
 




제9회-교육부문


임석재선생
임석재선생은 일찍이 대학시절부터 한국의 고유한 민속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설화를 수집하는 작업을 시작하여 70여년간 변함없이 계속하였다. <한국구전설화전집>에 실린 자료들은 그가 어릴적부터 일상생활속에서 들었던 이야기,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을 통하여 취택한 자료, 그리고 선후배와 동료들이 제출한 과제물을 통하여 취택한 자료, 그리고 선후배와 동료들의 도움으로 획득한 설화 등, 장시간에 걸쳐 수집한 것을 정리한 것으로 함경도에서부터 제주도에 이르는 한국 전역의 설화를 총괄한 것이다. 그 자료집이 한국의 민속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음은 말할것도 없지만, 그가 지녀온 한국 고유의 민속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착은 자신의 연구생활속에서, 그리고 교단생활속에서 끊임없이 지켜져 왔다는 사실 그대로가 탁월한 교육자로서의 생애를 말해주는 것이 아닐 수가 없다.

그는 무속연구에 선구자였다. 그가 생각한 무속연구의 주제는 원시적 미신에 가까운 샤머니즘으로부터 한국적 민간신앙인 무속을 구별하고 무속을 우리 민족의 집단적 경험과 예지를 표현하는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고찰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1960년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무속의 개념과 구조, 의의, 기능등을 규명하고자 시도하였다. 그가 이룩한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불교, 도교, 유교의 전래과정에서도 무속은 흔들림 없이 오랫동안 자체의 모습을 유지해 왔음을 밝힌 점이다. 무속속에 담겨진 신관을 새롭게 들어내어 종교학적 지식의 새로운 장을 열어 놓았다. 모름지기 우리의 교육은 우리의 민족문화속에 응축된 의식과 행동의 이해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임선생의 신념이었던 것 같다.

또한 그는 설화와 무속 이외에 우리 민족의 의식 심층에 자리잡고 있는 정신과 정서를 파악하기 위하여 민요와 탈춤 등의 연구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1950년대에는 전래동화와 동요 등 아동문학에 관한 연구자료를 남겼다. 지금도 구전민요, 민속과 무가, 그리고 가면극 등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고 그것을 교육적 목적으로 활용하는데 관심을 두고 이다.

임석재선생은 교단에서 심리학과 민속학을 가으이하는데 전 생애를 바친 교육자이다. 그는 중요한 행정직을 맡은 일이 없고 오직 평교수로서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나 연구를 위한 학회 조직활동에는 남달리 적극적이어서 한국문화인류학회, 굿학회, 비교민속학회 등을 창립하는 일을 주도하였으며 한국심리학회, 한국인류학회, 대한정신건강협회 등의 회장을 맡기도 하였다.


산업기술부문


김재철
김재철선생은 "성실한 기업활동으로 사회정의의 실현"이라는 창업이념 아래 우리나라 원양어업의 초창기인 1969년4월 바다식량 개척을 위한 개척자적 정신으로 <동경산업주식회사>를 창업하여 "해양개발의 결실로 인류생활에 공헌한다"는 확고한 일념으로 신어장의 개척, 신어법의 개발, 어로장비의 과학화등을 통한 생산성 제고, 어획물가공, 수출을 통한 부가가치 증대 및 외화 가득률 제고등 수산업 발전을 위한 찬란한 업적을 이룩하였으며, 일찍부터 자원빈국인 우리나라의 장래가 바다개척에 달려있다고 굳게 믿고 수산전문 교육기관과의 자매결연 사업을 통한 꾸준한 지원으로 수산전문인 양성에 심혈을 기울여 왔고, 재단법인 동경육영재단을 설립하여 본격적인 장학사업을 통한 후진양성을 위해 남다른 노력을 하고 있으며, 또한 매년 초.중등생을 위한 글짓기대회 (제1,2회대회-바다글짓기 대회, 제3,4회-지구사랑 글짓기 대회)를 실시하여 자라나는 어린 세대에게 바다의 중요성과 해양개척사상 고취 그리고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그는 70년대의 오일쇼크 및 미.소등 각국의 200마일 경제수역 선포에 따른 조업제한등 원양어업을 위협하는 여러가지 기업외부 환경악화에도 불구하고 동경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켰음은 물론, 경영합리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 수익성제고로 업종의 다양화를 기한 결과 2차 산업인 동경청밀주식회사, 3차 산업인 한신증권주식회사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시키는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하였으며, 바쁜 경영활동중에도 한국수산회 회장, 경양어업협회 회장을 역임하여 수산업 발전을 위한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봉사, 우리나라 수산업 및 해양산업 발전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외에도 김재철선생은 미국, 일본과의 어획물쿼터 및 어업협정관련 수산관계 외교 활동에도 숨을 노력을 헌신적으로 기울여 왔으며, 우리나라 해양산업발전을 위해 국가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2000년대를 대비한 수산행정기구 개혁을 위한 연구사업도 직접 진두지휘하는 등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문학부문


피천득선생
피천득씨는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상해로 유학을 떠나 상해 호강대학 영문학과를 1937년에 졸업하였으며, 문단에 정식으로 데뷔한 것은 <서정소곡>(신동아)이었다. 귀국한 씨는 각급 학교에서 영문학을 가르쳤으며, 1974년까지 서울대학교에서 복무하였다.

시인으로서의 씨의 활동은 시집 <서정시가>(1947), <금아 시문선>(1960), <산호와진주>(1968), <생명>(1993) 등으로 대표된다. 매우 과작에 속하는 씨의 시작품들은 영롱한 지성의 배ㅊ남과 아울러 동심과 같은 순진무구함으로 요구될 수 있다.

특히 시집<생명>에서 그 절정을 보여주는 바, 삶에 대한 원숙하고도 빈틈없으며 생명 그것처럼 단순 소박한 시적 표현은, 기교주의라든가 거친 일상적 내용이나 짙은 현실주의에 기울어진 우리 시문학계에 커다란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뿐만 아니라 간략하고도 정제된 시형식은 씨만이 이룩한 높은 경지여서, 이것만으로도 우리 시문학계를 빛낸 업적으로 평가된다. 시 분야에서의 활동 외에도 <수필>, <플루트 플레이어>, <인연>, <그날> 등과 같은 쉽고도 진솔한 수필등을 통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피천득씨의 문학적 업적은 여기에만 멈추지 않는다. 영문판 시문집 <피리부는 사람>(1968)을 비롯, <삶의 노래>, <세익스피어 소네트시집> 등을 통하여 우리 문학의 세계화 및 영문학의 국내 소개에도 남다른 정확함으로써 공헌한 바 있다.


학술부문


윤능민선생
윤능민교수는 1960년대이래 오늘날까지 30여년간 주로 금속수소화물에 의한 유기화합물의 선택환원반응 연구에 일생을 바쳐온 학자로서 그간 이 분야에 많은 연구업적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그의 많은 연구업적중 특히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연구업적은 Borane에 의한 유기산의 환원연구, 비대칭합성에 관한 연구, KPH3 BH에 의한 환원반응 연구, 그리고 유기산의 에스테르로부터 해당하는 알데히트를 0℃에서 얻을 수 있는 새 수소화물인, SODIUM DIETHYLPIPERDINOHYDROALUMINATE의 개발 연구 등이다. 윤교수의 이와 같은 기초 및 응용분야의 탁월하 연구업적은 국제적인 전문학자들로부터 높이 평가 받아 자주 인용됨은 물론 유기화학분야 학문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학문적 성과들이다.

윤교수는 이외에도 일련의 새로운 아민의 합성법을 최근에 발표한 바 있는데, 이는 BOROHYDRIDE 이온을 이온교환 수지에 부착한 BER을 이용하여 이전보다 훨씬 간편하게 아민을 합성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한다. 예컨데 같은 분자내의 할로겐, 유기산, 에스테르, 시아노 기, 매톡시 기, 히드록시 기 등을 다치지 않고 실온 1-3시간내에 지방족 및 지향족 니트로 작용기를 손쉽게 아미노 화합물로 정규적으로 환원할 수 있다. 현재 이 방면의 연구는 활발하게 계속되고 있으며, BER-NI계에 의한 유기 할로겐화물과 유기 아지드 화합물의 선택환원 연구가 완성 단계에 있다.

또한 현재 윤능민 교수는 전국의 유망한 유기화학자 31명을 규합하여 유기반응연구센터를 창설하여 이들이 국제적으로 명망있는 연구집단이 되게 하기 위하여 헌신하고 있다. 동 센터는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1992년에만 93편의 논문이 센터를 통해 국내외 저명학술지에 발표된 것을 보더라도 윤능민 교수의 책임하에 유기반응연구센터의 연구활동이 매우 활발함을 확인할 수 있다. 윤교수는 지난 1993년 서강대학의 명예교수로서 일선 교육에서 정년 퇴임시까지 40여년을 우수한 연구 수행과 함께 훌륭한 후진학자 양성에도 헌신적으로 노력하여 우수한 화학자를 많이 양성하였으며 또한 대한화학회의 간사장 및 학회 회장직을 맡아서 대한화학회가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학회로 성장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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