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hon Kim Sungsoo -A Korean Nationalist Entrepreneur 
 
 
 
 




제6회-교육부문


이창노(1914년5월26일생)
이창노선생은 8.15광복 직후 중등교육계에 투신하여 평생을 독자적이며 내실있는 중등사학의 육성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신 분이다. 그는 진지한 자세와 솔선수범하는 노력으로 교육에 임하였고 독창적 교육이 가장 보편적인 교육방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참다운 교육인의 본보기로 평가받고 있다.
선생의 주요 공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지난 1947년 대광중학교 교감으로 부임한 이후 39년 간을 교육계에 재직하면서 대광중고등학교의 창립, 발전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즉 1955년부터는 부교장으로 60년부터는 고교교장으로서 동교가 건실한 사학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왔다. 그리고 85년 정년퇴임 이후에는 부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동교를 명문 중등사립으로 육성 발전시키는데 심혈을 경주하여 한국중등사학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2)선생은 평생을 통하여 독자적인 사학가의 정립과 조화로운 심성발달, 지.덕.체의 균형을 이루는 전인교육의 이념구현을 위해 노력하였다. 특히 1977년에는 학교내에 훌륭한 생활관을 준공하여 학생들이 매년 4박5일간의 합숙생활을 통하여 덕성교육의 실천과 공동체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하였다. 이것은 다른 중등사학에도 학생생활지도의 좋은 모델로 제시되어지고 있다.

3)대한사ㅗ등학교장회의 모임을 의 독자적 신장과 전인교육의 이념구현 등을 역성하였으며 그것의 이론적 근거를 체계적으로 연구보고하였다. 또한 중등사학에 있어서의 생활지도활동 강화, 카운셀링제도의 도입 운영에 앞장섬으로써 이 방면의 교육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상과 같이 선생의 교육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일찍이 사범학교를 졸업하고도 그후 교육학을 전공, 이론적 기초를 계속하여 닦는 등 스스로 교육적 신념과 이상의 실천, 말과 행동의 일치에 노력하는 깨끗한 사도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생활지도강화와 덕성교육의 실천을 위한 노력은 이론과 실천의 결합을 통하여 다른 중등사학의 발전에도 건전한 영향을 미쳤다.
한국중등교육의 발전을 위한 그의 탁월한 지도력, 강력한 실천력은 많은 이들에게 훌륭한 사학인으로 숭상되고 있고 모범적인 교육자의 귀감이 되고 있다.


언론출판부문


기독교방송
기독교방송은 1954년12월15일에 개국된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의 민간방송으로 창립 이후 지금까지 ①그리스도의 복음선교 ②도의심 앙양과 기독교적 교양육성 ③국민의 정서함양 ④생활정보 제공과 민주시민의식 계발 ⑤민족문화의 전승 및 발전 ⑥건전하고 명랑한 사회기풍 조성이라는 방송편성의 기본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자유당 정권 때에는 국영방송체제 속에서의 유일한 민간방송으로서 정권의 이해에 굴절됨이 없이 올바르고 정확한 뉴스를 보도함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객관적인 정세 판단을 하는데 기여하였다. 특히 4.19 학생의거를 전후한 기독교방송의 뉴스는 정세를 정확하게 알수 있는 유일의 뉴스소스로 방송뉴스의 신기원을 이룩하였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유신체제 아래서는 극심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반민주적 반인권적 행위에 맞서 이 나라의 민주화와 인권신장을 위해 공정한 보도, 사실의 충실한 전달과 탁월한 비판기능을 다함으로써 국민에게 가장 신뢰받는 언론의 자리를 지켰다. 특히 유신시대에 기독교방송이 수행한 민주화운동과 인권옹호 및 인권신장운동은 가장 높이 평가 받아 마땅한 업적이다.

기독교방송은 종교방송으로서의 품위를 지켜 청취자의 흥미에 영합하지 않고 청취자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 왔다는 점에서 상업주의에 물든 여타에 방송과 구별된다. 편성원칙에 충실한 교양프로그램 위주의 방송을 해왔으며 특히 고전음악과 토론프로그램, 라디오 칼럼 등을 통해 청취자의 교양을 함양시키고 민주시민의식을 계발하는데 기여했다.

80년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광고방송과 뉴스보도를 금지당하자 이는 언론자유의 제한이며 기독교방송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으로 언론계,학계,기독교계,시민운동단체,야당 등에서 철회 운동에 앞장섰다. 이같은 반대운동이 광범위한 국민운동의 성격으로 전개된 것은 기독교방송이 국민의 사랑을 받는, 없어서는 안될 방송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기독교방송은 개국 후 역대 독재정권의 탄압에 굴종하지 않고 공정한 보도, 사실보도, 진실보도와 비판기능을 통해 이 나라 민주화와 인권신장에 기여하고 상업주의를 배척한 대표적인 언론이라 하겠다.


공공봉사부문


유경운선생(1930년5월28일생)
유경운선생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의관 복무를 마친 후 뜻한 바 있어 고향 근처의 라병원인 국립소록도 병원에서 외과부장 등으로 약 6년간 진료사업에 종사하였다. 그후 미국과 인도 등에서 정형외과 기술을 연수하였으며 여수애양 재활병원에서 부원장,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나환자의 진료 및 수술을 행하였다.(연인원33만여명) 그리고 전라남도 4개시 5개군과 진천진료소 등의 재가 나환자 및 외래나환자를 이동진료하였고(연인원8만여명) 불구나환자의 재활수술(3,400명) 및 치유자의 사회복귀사업을 도왔으며(205명) 극빈나환자 자녀 장학금 지원(558명), 나병계몽 및 보건교육 등에 많은 노력을 하였다.

한편 그는 고령불구나환자를 수용 보호하는 양로원사업(180여명)과 인근 정착촌의 주민진료사업(연인원 12,500여명), 나불구자 및 지체장애자의 직업재활사업(연간약25여명)에도 헌신하였다. 특히 여수애양 재활병원은 오늘날 나환자 뿐만 아니라 소아마비 등 지체장애자들의 시술 및 재활사업을 성공시켜 전남지방 뿐만 것은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나병환자의 진료 및 시술에 종사하는 선교사와 수녀 등은 간혹 있었으나 한국인으로서 이들 못지 않게 헌신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며 저렴한 의료서비스를 하면서도 병원 수익금을 다시 양로원에 기부하고 있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로 평가된다.

이상과 같은 선생은 22년간을 의사로서 또 병원장으로서 나환자와 일반 지체장애자를 통합적으로 치료하여 나환자의 사회 적응력을 길러 사회재활의 계기를 삼도록 하였으며 일반화자와 보호자들에게 나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동시에 지체장애자들에게 의료적인 재활치료를 통해 육체적 재활을 도모하고 직업재활 교육과 직업보도 사업을 통해 사회적 재활을 도모하며 심리적 정신적으로 상담요법을 통해 인격재활을 기하기까지 전인적 재활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유경운선생의 전문직업인으로서의 헌신적인 노력과 지역사회보건 및 의료사업 발전에 대한 기여는 애수 재활병원이 자선병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였고 또 사마리아인회(회원5천여명) 및 미국 나병선 교회 등 많은 후원자의 지속적인 지원이 있도록 하는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


문학부문


윤석중선생(1911년5월25일생)
문학이 인간의 생활에서 갖는 중요한 의미의 하나는 자라나는 세대를 위하여 읽을 거리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특히 어린시절에 무엇을 읽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며 어린이를 위하여 읽을 거리를 마련하는 일은 어떤 일보다도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동문학이야말로 가장 어렵고 중요한 문학분야이다.

우리 현대문학에서 아동문학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윤석중선생의 거대함은 새삼스러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는 1932년 <윤석중 동요집>부터 87년의 <아기꿈>까지, 그리고 88년의 <윤석중 전집>에 이르기까지 천편도 넘는 동요와 동시, 동화를 선사하여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문학의 뜰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중에 수백편은 노래가 되어 우리 어린이들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실로 그의 노래와 이야기가 없었더라면 어린이들은 무엇을 마음의 자양으로 하여 자라날 수 있었을 것인가 하는 두려움을 가질 정도로 아동문학에서의 그의 업적은 뚜렷하다.

어린이를 위한 그의 노래는 한국어의 가장 기본적인 음악에 충실하면서도 간드러지지 않고, 그의 자연과 사물과 사람에 대한 태도는 섬세하고 다정하면서도 감상적이거나 나약하지 않고 건강하다. 그는 사람과 사람의 일에 대하여 도덕적이고 교훈적이기 보다는 사실적이고 너그럽다. 그리고 그의 노래와 이야기들은 맑고 바른 마음, 서로 아끼고 존중하며 사는 삶, 기쁨을 가르칠 수 있는 삶을 가르친다.

1930년대 이후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그의 말을 통하여 모국어의 감각을 익히고 그의 정확하고 신선한 눈을 통하여 세상의 사물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그의 다정하고 자상한 마음을 통하여 스스로의 마음을 기르고 씩씩하고 강인한 의지로서 나라를 사랑하고 세상에 나아가는 일을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중선생의 활동이 아동문학에만 한정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는 아동을 위한 문학, 음악, 놀이 연구그룹을 조직하고 아동과 어머니의 사회적 인정을 확대시키는 상을 제정하는 등 아동들이 건강하게 자라남을 존중하는 사회풍토 조성에 적극 노력하였다. 이것은 그의 동요나 동화가 깊은 인도적 관심에 이어져있는 것으로 보아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동문학의 업적은 궁극적으로 우리사회의 도덕적 발전에 대한 보다 넓은 관심의 한 표현이다.


학술부문


김태길선생(1920년11월15일)
김태길선생의 철학세계와 학문활동은 서울대 철학과에서 윤리학을 전공하였던 출발부터, <철학문화연구소>를 통해 철학의 저변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현재까지 실천지향적이며 현실지향적인 성격을 특징으로 한다.

그의 가장 중요한 학문적 성과로는 실천철학의 한 분야로서 윤리학의 연구에 일생을 몰두하여 해방 이후 한국 윤리학의 학문적 기초로 세웠다는 점이다. 초기의 윤리학 연구는 학으로서 윤리학의 가능성과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 언어분석이론에 기초한 영미의 분석윤리학에 집중되었다. <윤리학적 자연주의와 정의주의>라는 학위논문은 이러한 연구의 시발점을 이루었고 동일한 시각에서 서양윤리학자 전반을 정리한 <윤리학>이라는 저서는 바로 메타윤리학적 탐구의 결산으로 윤리학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고전으로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이상과 같은 학문적 기초위에서 수행된 그의 규범윤리학적 탐구는 70년대 초반부터 사회윤리학에 집중되어 롤즈, 노직, 맥펴슨과 더불어 헤겔, 맑스, 포퍼를 두루 섭렵하고 이를 한국적 맥락 속에서 비판적으로 분석 평가하여 최근 <번혁시대의 사회철학>을 출간하는 성과를 낳았다. 이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 검토한 후 한국사회가 요구하는 자유주의적 정의사회의 모형을 제시하고 있는데 <윤리학>이 그의 방법론적, 분석윤리학적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면 <사회철학>은 그의 규범론적, 사회윤리적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이 밖에 그의 학문적 업적은 <듀이의 사회철학>을 통한 미국철학의 소개 및 한국철학 정립을 위한 미국적 모형제시, 한국철학회장 재임시 <한국철학사> 전3권 및 <한국철학연구>전3권을 기획.간행한 일, <한국 대학생의 가치관 연구><한국인의 가치관 연구><소설문학에 나타난 한국인의 가치관> 전 2권 등 일련의 가치관 연구를 통해 한국인의 가치관 정립을 위한 기초연구를 수행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상의 학문적 성과를 기초로 <인간의 존엄성과 성실><철학 그리고 현실><새로운 가치관의 지향>등의 한국적 윤리관의 모색과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을 위한 보다 일반적인 저술들이 있다. 나아가서 일반인의 삶 속에 보다 깊숙히 침투하기 위한 생각하는 수필들로 철학성 뿐만 아니라 문학성도 인정받고 있는 <웃는 갈대><흐르지 않는 세월><껍데기와 알멩이> 등 10여권의 철학적 에세이들이 있다.
끝으로 철학과 철학문학의 저변확대를 위해 <철학문화연구소>를 설립하여 자신이 일생동안 수행해 온 철학과 현실의 매개활동을 보다 공적이고 지속적인 사업으로 발전시키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사업의 일환으로 계간지 <철학과 현실>을 발간하고 있다. 한편 이 연구소를 통해 일반인을 위한 사랑방 강좌, 철학교사의 재교육을 위한 워크샵, 주부.청소년.어린이를 위한 철학 강좌 등을 기획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선생께서는 지난 40여년간 일관되고 지속적인 학문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이 땅에 본격적인 실천철학의 터전을 닦은 분이며 그의 왕성한 학문 및 집필활동을 우리로
하여금 실천지향적이고 현실 지향적 철학활동의 보다 높은 단계의 결실을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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